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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현실을 모방하고 현실은 예술을 동경한다. 그래서일까. 평면의 스크린 속에 상영되던 현실을 다시 오감으로 맞는 일은 여전히 한 편의 예술로 다가온다. 아름다워 영화가 되고, 영화가 되어 더욱 빛을 발하는 삶, 그리고 자연. 발걸음으로 필름을 돌려 다시 그곳으로 간다.
초록이 바래고 회색빛으로 뒤덮이는 겨울에도 제멋을 잃지 않는 길들이 있다. 외려 약간의 쓸쓸함이 때론 운치를 더하기까지 한다. 서울의 서쪽 관문, 독립문 사거리 옆 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 뒤로 난 안산자락길이 그렇다. 안산자락길은 독립공원, 서대문구청, 연희숲속쉼터, 한성과학고, 금화터널 상부, 봉원사, 연세대 등 다양한 곳에서 쉽게 숲길로 들어설 수 있다. 게다가 어디서 시작하건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는 7km의 순환형 길로 만들어져 열두 달을 돌아 다시 1월을 맞이하는 시계(時界)를 공간으로 옮겨온 듯한 느낌마저준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자락길은 초록이 바래고 회색빛으로 뒤덮이는 겨울에도 제 멋을 잃지 않는다. 순환형 무장애 숲길로 2시간이면 겨울산의 장쾌함을 한껏 느끼고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
겨울옷 입고도 제멋 간직한 자락길
영화보다 치열했던 투사의 삶 닮아
서대문형무소는 자락길로 통하는 대표적 관문이다. ‘흑수선’, ‘광복절특사’, ‘암살’, ‘밀정’ 등 최근까지도 많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그러나 단순히 영화 촬영지라 하기엔 여느 곳에서 느껴지는 북적거림이나 산뜻함은 없다. 500명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 안에는 광복을 향한 혼만 남긴 채 스러져간 3000명 독립운동가들의 사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는 1908년 전국의 독립투사들을 투옥하기 위해 전국 15곳에 감옥을 만들며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지었다. 단순 수감시설을 넘어 구치소로서 일제가 취조와 고문을 일삼던 장소였다. 투사들은 거꾸로 매달려서도, 맨주먹에 얼굴이 터지고 쇠창살에 온몸이 찢겨도, 고문으로 기절하기 직전까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스크린은 참담한 현실을 담아내기엔 작고 평평한 듯했다.
형무소에서 나오는 출입구 인근 공사장에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수감한 옥사 창고 원형을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사장 벽면에는 영화 ‘암살’의 주인공들 얼굴이 박혀 있고 ‘영화의 장면 속 남자현 지사의 모습을 찾아보세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영화배우 전지현이 연기한 임옥윤은 서로군정서 등에서 활동하며 일본 장교를 암살하려다 체포된 남자현 지사를 본떴다 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안산자락길을 가려면 한성과학고 북쪽 담장에서 시작하는 진입로를 찾으면 된다. 안산자락길이 놓인 안산(鞍山)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성으로 도읍을 옮기며 궁궐의 주산(主山)으로 생각했던 곳이라 한다.
태조가 도성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안산에 올랐다가 궁궐 자리가 협소하다고 여겨 이곳을 포기한 까닭에 지금처럼 북악산을 북쪽에 두고 한양도성의 경계가 그어졌다. 비록 임금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으나 안산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근 주민들의 숲길 산책로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서울시가 2010년부터 장애인이나 노약자들도 편히 걸을 수 있는 ‘무장애 자락길’ 사업을 추진하면서 300m 높이 산비탈에나무 데크를 깔아 2시간이면 가볍게 걸어낼 수 있는 자락길 코스를 만들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면 작은 산이 옹기종기모여 있다. 여기서 자락길을 잠시 벗어나 안산봉수대에 오르면 발아래 인왕산과 남산이 자아내는 산수화가 펼쳐진다. 인왕산을 자주 오르내렸다는 시인의 노래가 무악(毋岳·안산의 다른 이름)까지 들려오는듯하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중략)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바람이 불어, 윤동주>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은 남자현 지사를 모델로 한 임옥윤을 연기했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여옥사 창고를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
세종마을의 소담한 골목길은 영화 ‘최악의 하루’에서 남녀가 인연을 맺는 장소로 등장한다. (사진=인디스토리) |
마천루 대신 하늘 품은 낮은 마을
골목길 구경거리 풍성해 길 잃어도 좋아
왠지 모르게 겨울에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마을이 있다.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에 자리한 서촌이다. 효자동, 청운동, 통인동 등 15개의 마을이 모인 이곳의 진짜 이름은 ‘세종마을’이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서다. 고층빌딩 대신 하늘을, 자동차 소리보다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품길 택한 마을은 영화 ‘최악의 하루’의 밑그림이 됐다. 주인공 은희(한예리 분)는 오래 만난 남자, 이전에 한 번 만난 남자, 처음 본 남자 사이에서 꼬여버린 하루를 보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야기의 배경은 수채화처럼 맑고 포근하기만 하다.
처음 본 남자 료헤이(이와세 료 분)가 길을 잃은 한옥마을엔 모두 ‘1호점’임에 확실한 갤러리와 카페, 식당, 옷가게, 일반 가정집들이 소담하게 붙어 있다. 고작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버거울 만큼 좁다란 골목을 앞사람의 구둣발 소리를 들으며 지났다. 료헤이는 은희에게 무엇하러 길을 물었을까. 한옥마을은 헤매도 금방 길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아담하고 얼마든 헤매도 좋을 만큼 정겹다. 발걸음을 망설이는 행인에게 갤러리 주인은 어서 오라 말했고, 자신을 PD라 소개한 카페 주인은 그의 정체만큼 미묘한 달콤쌉싸름한 모과차를 내왔다. 세종마을은 그렇게 목적을 정하지 않고 우연으로 하루를 만들어가고 싶은 곳이다.
그래도 빼놓지 않고 마을을 둘러보길 원한다면 서울 동네골목길 16코스의 이정표를 따라가길 권한다. 인왕산 자락엔 겸재가 남긴 인왕제색도의 진짜 ‘그림’이 걸려 있고, 현대 동양화단의 거목 박노수의 집엔 근대 예술가의 숨결이 잠들어 있다. 과거와 현재, 사람과 길이 만나는 곳은 영화 같은 추억을 남긴다.
[위클리공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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