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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모 병원 어린이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난 거기 입원해있던 환아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 병동 복도 벽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리고 있었다. 한 아이가 내 그림을 물끄러미 보고 있길래 아이 엄마의 동의를 구한 후 색칠을 해보게 했다. 아이의 왼손엔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하지만 걱정 가득해 보이는 아이 엄마와 달리 아이의 표정은 너무 밝았다.
오래지 않아 아이는 힘에 부쳤는지 붓질을 멈췄다. 아이에게서 붓을 건네 받아 다시 색칠을 시작하려는데 아이가 자리를 뜨지 않고 날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그만 병실로 돌아가자”는 엄마의 권유에도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자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와, 내가 그린 에디가 완성됐어요!”
10년 벽화 봉사, 비결은 ‘즐거움’
‘그 아이는 잘 회복돼 건강하게 퇴원했을까?’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가도 가끔 그 아이가 생각난다. 가볍지 않은 병을 지닌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걱정되는 게 사실이지만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그때 잠깐 동안이라도 붓을 쥐여주길 정말 잘했어!’
난 삼성전자 벽화 봉사 동아리 ‘희망채색’에서 활동하고 있다. 벽화 봉사라고 하니 거창한 것 같지만 구성원 대다수가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배운 그림이 전부인 아마추어다. 그래도 내년이면 벌써 설립된 지 10년. 그간 회원들 손을 거친 벽화 수는 80개를 넘어섰다. 실력도 괜찮은 편이어서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명소의 벽화도 여럿 그렸다.
전주한옥마을·잠실야구장·화성행궁동벽화마을·파주문화센터·서울중앙시장·궁평항·무주호롱불마을·수원보훈원·용인경찰서·오산시민회관·일산경찰서….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다.
사실 치열한 산업 현장의 중심에서 매일 씨름해야 하는 회사원이 금쪽 같은 주말 시간을 봉사에 투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스스로도 가끔은 자문해본다. ‘이 바쁜 와중에 그림을 배우고 시간 날 때마다 벽화 봉사에 나서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 ‘즐거움’이다. 그날 중환자실 병동에서 만난 아이의 미소가 날 포함한 봉사자들에게 선사한 것도 즐거움이었다. 답답한 구석에 서거나 쪼그려 앉아 하루 열 시간씩 그림 그리는 일, 사실 즐겁기는커녕 고통스러운 쪽에 가깝다. 특히 요즘처럼 화창한 가을 주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작업 사이사이, 힘들었던 시간을 완전히 잊게 되는 순간이 있다. 창백했던 아이의 표정이 환한 미소로 바뀌는 그날이 바로 그랬다. 지나간 시간은 까마득히 잊히고 눈앞에 펼쳐진 순간만 마음속에 담긴다. 희망채색 구성원 모두가 그 ‘마법’을 잊지 못해 올해도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총각 덕분에 쓰레기가 사라졌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처럼 사람들은 아름다운 걸 함부로 망치거나 더럽히지 못한다. 실제로 얼마 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한 지역에서 쓰레기 상습 투기 지역이었던 일대를 벽화로 단장했더니 이후 쓰레기 배출이 80%나 감소했다고 한다. 벽화 봉사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뉴스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여러 차례 해봤기 때문에 요즘도 봉사하러 갈 때면 후미지고 지저분한 곳부터 찾아 우선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가끔 내가 그린 그림이 잘 보존되고 있는지 궁금해 봉사 갔던 지역을 다시 둘러보곤 한다. 정말 그곳에 쌓여있던 쓰레기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경우가 많다. 다시 찾아간 봉사 장소에서 그곳 동장님을 우연히 만난 적도 있다. “총각 덕분에 쓰레기 구경 이제 안 해. 정말 고마워. 복 받을 거야!” 비록 총각(?)은 아니지만 당시 들었던 칭찬은 요즘도 봉사에 나설 때마다 큰 힘이 된다.
사실 벽화의 환경 개선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잘 그린 벽화가 관광객 유치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같은 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벽화를 그리며 만난 사람들, 완성된 벽화가 가져온 공간의 변화가 주는 즐거움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아무리 바빠도 짬을 내어 주말 봉사에 나서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봉사 도중 알게 된, 소중한 인연이 하나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인근 지역 대표 먹거리인 새우튀김과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고생 많다”고 격려해주신 노점상 할머니, “운영하던 식당이 벽화 덕에 지역 맛집으로 탈바꿈, 재기에 성공했다”며 예비 신부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하던 청년 자영업자, “희망을 그리는 여러분을 보며 정호승 시인의 시 ‘손에 대한 예의’가 떠올랐다”며 시집을 선물해주신 초등학교 선생님, “벽화가 그려진 후 매출이 훌쩍 뛰었다”며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나눠주셨던 슈퍼마켓 아주머니…
어느덧 마흔 중반. 챙겨야 할 일은 많아졌는데 체력은 갈수록 떨어진다. 하지만 10년 후, 20년 후에도 벽화 봉사 활동은 힘 닿는 데까지 계속할 생각이다. 내 그림을 보고 활짝 웃어줬던 6년 전 그 아이처럼 내가 채색하는 희망을 알아보고 즐거워하는 이가 존재하는 한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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