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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목공예품으로 가득한 대구 모처 공방 안, 나무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나무 향을 더 깊게 맡고 싶어 절로 코를 가져다대자 “자작나무 향이에요”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상희 미레아우드디자인 대표였다. 첫인사를 건네는 김 대표의 열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뼈마디가 유독 굵어 보이는 열손가락은 얼마나 많은 목재가 그의 손을 거쳐갔는지 짐작하게 했다.

친환경 가구 만드는 미레아우드디자인 김상희 대표
친환경 가구 만드는 미레아우드디자인 김상희 대표.(사진=C영상미디어)

김상희 대표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창업학교 ‘신사업창업사관학교’의 우수졸업생이다. 제시한 아이템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일정 수준의 지원을 통해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 중 한 명이라는 의미다. 공방을 열기 전 그는 두 자녀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지만 마음 한편에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오랜 소망이 있었다. 러시아 유학생 시절 자작나무 숲에 매료된 기억 속 풍경은 10여 년 넘게 간직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시간에 쫓기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러시아에 가면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이르는 800km 정도의 길이 있어요. 옆으로 자작나무 숲이 쭉 이어져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밤이었던 것 같아요. 그 길을 따라 열두 시간 동안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다 나무가 전하는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죠. 어릴 적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터라 자작나무에 흥미가 생기자마자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해지더라고요.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죠.”

꾹꾹 묻어두기만 한 갈증을 되살아나게 한 건 국내에 찾아든 DIY(Do It Yourself,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한 상품) 열풍이었다. 영국을 여행하면서 봤던 유럽 가구의 트렌드와 러시아 자작나무의 매력을 떠올리며 목공예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목공예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딸을 위한 작은 의자를 만들었다. 꿈꿔오던 것을 해냈다는 설렘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첫 작품을 블로그에 소개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 왔다. 취미로 시작한 목공예를 업으로 삼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손재주를 앞세워 가구 제조사에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가구 디자이너로 보낸 7년은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엄마로서 내 아이를 위한 가구를 만들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다. 아이가 가구 모서리에 부딪혀 상처를 입거나 유해물질 탓에 가려움을 호소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단 자신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주변 엄마들과 대화를 해보니 비슷한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자녀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책은 ‘창업’이었다.

김상희 대표가 천연이끼식물을 넣은 장식용 소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C영상미디어
김상희 대표가 천연이끼식물을 넣은 장식용 소품을 들어보이고 있다.(사진=C영상미디어)

평범한 주부에서 성공한 창업가로

김 대표가 아이들 가구를 제작하기 위해 선택한 목재는 자작나무다. 원목은 크게 소프트우드와 하드우드로 분류되며 침엽수와 활엽수로 이해하면 된다. 그중 소프트우드의 경우 무른 성질 때문에 찍힘 현상이 많아 가구용 목재로는 하드우드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다만 하드우드는 너무 단단하고 비싸다 보니 하드우드와 소프트우드 중간 수준인 자작나무를 고른 것이다. 특히 자작나무는 러시아와 같은 추운 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수분 함량이 적어 변형 가능성이 낮고 외부 충격에도 강하다고 한다.

“MDF(섬유판)나 PB(파티클보드)를 주 재료로 한 가구는 유해물질이 단점으로 꼽힙니다. 톱밥과 접착제를 압착해서 제조하기 때문에 ‘포름알데히드’라는 발암물질이 발생할 수 있어요. 이러한 점에서 제가 만든 가구는 안전성이 가장 큰 차별점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작나무를 사용한 데다 친환경 마감처리로 아토피 걱정을 덜 수 있죠. 가구에 별도 색을 입히지 않는 이유도 보다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최근 KC인증을 통해 ‘어린이가 사용했을 때 안전하다’, ‘포름알데히드가 방출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받기도 했습니다.”

이 끼 식물로 채워진 벌집 형태 의 인테리어 소품 ⓒC영상미디어
이끼 식물로 채워진 벌집 형태의 인테리어 소품.(사진=C영상미디어)

김 대표는 자신이 가구를 제작하는 사람이기에 앞서 자녀를 둔 엄마로서의 신념도 상품에 충분히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엄마, 아빠 마음을 자작나무에 담았습니다’라는 슬로건 또한 같은 맥락이다. 대량생산을 고집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환경오염과 자녀 건강문제를 고민하는 부모들을 위해서는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된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진심이다. 그래서 그는 생산부터 유통까지 자체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유통 마진을 없애고 가격을 최소화하고 있다.

김 대표는 KC인증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며 가구의 내구성을 자신했다. 제품 안전검사를 신청할 때 이후 ‘폐기’와 ‘회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대다수가 폐기를 선택한다고 한다. 검사 중 가해지는 충격이 제품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회수보다 폐기가 나은 선택이라고 여겨져서다. 그러나 그는 안전검사를 거친 제품들을 모두 회수하고 매장에 진열했다.

“검사를 받았다는 스티커가 부착된 제품인데 모두 멀쩡하게 돌아왔어요. 매장에 전시하는 목적은 이 제품들을 판매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 결과물이 얼마나 견고한지 고객들에게 확신시켜주고 싶어서입니다.”

가장 애착을 갖는 제품을 묻자 전면에 비치된 ‘360도 회전책장’을 가리켰다. 회전책장은 영국 도서관에서 보았던 책장에서 착안해 만든 아동용 가구다. 180도로 회전하는 기다란 형태의 책장인데 회전 반경이 너무 길어 일반 가정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폭을 줄이는 대신 360도 회전하는 디자인의 책장을 고안했다. 특히 회전레일에 공을 들였다. 기존에 있던 레일로는 큰 무게를 떠받칠 수 없어 알루미늄을 티타늄으로 바꾸고, 15개의 샘플링을 받은 끝에 지금의 회전책장에 꼭 맞는 레일을 완성했다. 결과적으로 회전책장은 다섯 살 아이의 평균 키 정도 되는 높이임에도 약 450권의 도서를 비치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김 대표는 퍼즐로 직접 만들 수 있는 에펠탑과 강아지 모형, 스칸디아모스(천연이끼식물)를 넣은 장식용 소품 등을 제작해 천편일률적인 가구를 벗어나 목공예 활용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스마트 공예라고도 하죠. 스마트 시대에 맞춰 공예와 디지털 기술과의 융합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데 저도 LED 조명을 결합한 목공예 작품을 만들었어요. 공명을 통해 소리를 더 크게 울려 퍼지도록 하는 무전기식 자작나무 천연 스피커도 있습니다. 역량이 커지고 자금력이 풍부해지면시스템화가 가능한 책상을 만들고 싶어요. 아동 책상은 신발과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아이가 성장하면 신발을 바꿔주듯 책상 크기도 달라져야 하니까요. 좋은 나무로 만든 책상을 몇 년 쓰고 버리면 아까우니까 기술적으로 자유롭게 변형시킬 수 있는 책상이 필요합니다. 외국에서는 하드우드 가구를 100년 가구라고도 해요.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 표현이 됐으면 좋겠어요.”

1 나무를 조각해 겹쳐 만든 조명. 2 김 대표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으로 꼽은 ‘360도 회전책장’.(사진=C영상미디어)
1) 나무를 조각해 겹쳐 만든 조명. 2) 김 대표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으로 꼽은 ‘360도 회전책장’.(사진=C영상미디어)

창업할 수 있었던 두가지 이유

김 대표는 창업이 가능했던 이유로 아이템 외에 두 가지를 꼽았다. 신사업창업사관학교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신사업창업사관학교의 지원이 없었다면 목공예를 하고 싶어 들인 시간과 노력이 창업으로까지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사업을 하려고 하니 마케팅, 회계, 세무 등 알아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신사업창업사관학교를 우연히 알게 됐고 제 아이템이 이곳에 선정된 덕분에 150시간의 이론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업자로서 자세와 지식을 갖추게 해준 조력자가 됐죠. 무엇보다 16주간 이뤄진 점포 체험 경험이 창업에 큰 도움이 됐어요. 실제로 가게를 열기 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고 더 나은 방안을 찾으면서 창업 실패율을 낮출 수 있었으니까요.”

SNS를 매개로 한 고객과의 소통 또한 공방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다. SNS는 가구 만들기만큼 꾸준히 해오는 활동임과 동시에 첫 작품을 소개한 공간이자 아이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 창구다. 그러면서도 그는 홍보성 SNS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상품을 파는 것에만 집중해서는 소비자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자신의 가구가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딸들이 쓰는 가구를 만드는 엄마였기 때문이다. 엄마의 마음으로 작업하다 보니 가구에 칠하는 것부터 붙이는 쇠 하나까지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큰 사업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마케팅 방법과 판로가 문제였다. 아무리 잘 만든 제품이라도 홍보 없이는 소비자의 반응을 끌어내기가 어려웠다. 또 공예산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시장에서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대기업 중심의 공예산업이 활성화되면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1인 공예가 또는 창업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되면 경력단절여성이나 젊은 층의 유입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창업가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한 김상희 대표에게 그와 같은 도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전할 조언을 부탁했다.

“자신의 아이템에 대한 확신과 전문적 지식을 키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차별적인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죠.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세요. 벤치마킹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스토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사업창업사관학교란

다양한 신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 아이템을 중심으로 예비창업자를 선발하는 사업이다. 선발된 예비창업자는 이론교육과 점포 경험 체험, 멘토링, 창업자금 등을 패키지로 지원받는다.

지원 절차
교육생 모집 공고 → 교육생 선정 → 창업 이론교육 → 점포 경영 체험 및 창업 멘토링 → 창업자금 및 사후지원

자료·신사업창업사관학교 누리집(http://newbiz.sbiz.or.kr)

[위클리공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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