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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이 달라졌다. 쇠락해가는 공간에 젊은 상인들이 둥지를 틀면서 낡은 이미지를 벗고 활력 넘치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젊은이들의 활력이 정(情)이 넘치는 시장을 부활시키는 중이다.

동진시장 김효선 청년 보부상 대표 

청년 보부상 김효선(36) 대표.

드림캐처 액세서리를 만드는 청년 보부상 김효선(36) 대표는 서울 연남동 동진시장에 둥지를 튼 3년차 청년상인이다. 그가 파는 수공예품은 그저 예쁘기만 한 장식용이 아닌 실용성까지 겸비한 작품으로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드림캐처’는 인디언이 만든 수제 장식을 부르는 말로, 악몽을 쫓아내고 좋은 꿈을 들인다는 주술적 의미가 있다. 그는 “드림캐처라고 하면 집에 매달아놓는 것만 생각하는데, 매일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팔찌, 귀걸이에 달아서 만들었다”면서 “수공예품을 파는 상인들이 내 작품을 보며 ‘이런 건 처음 본다’고 얘기해주니 뿌듯하다”고 활짝 웃었다.

 동진시장
그가 연남동 동진시장에 온 것은 2015년 여름. 플리마켓(벼룩시장)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를 통해 발을 들였다. 처음 동진시장에 청년장터가 열릴 때만 해도 지금처럼 손님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좌판 하나만 벌일 정도로 소규모로 운영됐는데, 지금은 30여 명의 청년상인들이 참여할 정도로 판이 커졌다. 1년 반 만에 유동 인구가 4~5배 정도 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동진시장 하나로 주위 상가도 바뀌고 지역 경기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에 회사를 관두고 나와 2년여 동안 삶이 무엇인지 회의감이 들었어요. 무기력한 시간을 이겨내려고 집 안에서 바느질이나 자수를 하며 손을 움직였죠.”

그는 수공예 작업을 하며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고, 소소한 행복과 힐링의 시간이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작은 소품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주는 것이 즐거웠고, 무기력을 극복해가는 시간이 됐다.

취미는 곧 생업으로 연결됐다. 김효선 씨는 “밥을 먹고 집세와 공과금을 내야 하는 절박감에 시작한 일”이라고 말한다. 동진시장 말고도 강남이나 홍대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 참여해 수공예품을 판다. 옛날로 따지자면 보부상인 셈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제 상상력이 디자인과 제작, 판매까지 이어지는 데 자부심을 느끼죠. 유행에 따라가지 않는 것은 저만의 창작 자존심이에요.” 손님을 맞는 그의 눈빛이 활기차다.

서울 풍물시장 ‘청춘 1번가’ 임하나 라온미나 대표 

임하나 라온미나 대표(왼쪽)와 드라이플라워를 파는 청년상인 강지혜 릴리케이 대표.
임하나 라온미나 대표(왼쪽)와 드라이플라워를 파는 청년상인 강지혜 릴리케이 대표.

1960년대 거리를 재현한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의 ‘청춘 1번가’에는 개성 넘치는 청년장사꾼이 운영하는 문화상점 10여 곳이 자리한다. 한복집과 액자 가게, 포목상 등 품목도 다양하다.

20대 청년창업가인 임하나(28) 라온미나 대표는 이곳에서 생활한복을 판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봄부터 이곳에 생애 첫 가게를 냈다. ‘라온’은 ‘즐겁다’의 순우리말. 라온미나 생활한복의 특징은 양장 천을 가지고 전통기법으로 재단해 한국의 멋스러운 이미지를 되살렸다는 점이다.

“천은 광장시장이나 동대문에서 떼어 와요. 한복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댕기나 노리개 같은 액세서리도 제작하고요.”

요즘 한복의 열기가 뜨겁다. 처음에 시작할 때만 해도 생활한복을 파는 쇼핑몰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수십 개가 생겨났다고 한다.

“유행을 넘어 생활이 되었고, 하나의 기호로도 자리 잡은 거죠.”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미술을 전공하며 한복에 매료된 그는 종로 광장시장에서 전통한복을 제작하는 기술자에게 수련을 받았다. 초, 중급으로 반이 나뉘는데 손재주가 있어서 반년 안에 기술자격증을 받았다. 그리고 2년여의 준비 끝에 사업을 시작했다.

청춘 1번가 상점의 주인장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서울시가 전통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청년창업가에게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을 일부 지원해줬다.

“점포 임대료가 해결되니 좋아요. 무엇보다 서울 한구석에 내 가게가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고객들이 옷을 입어보는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걸 해결했으니까요.”

그동안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오픈 마켓도 참여한 적이 있지만, 탈의시설이 없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시장은 열려 있는 공간이에요. 온라인은 입어볼 수 없는데, 직접 입어볼 수 있으니 매상이 훨씬 나아졌죠.”

처음부터 큰돈을 투자해 시작한 사업은 아니다. 욕심 안 내고 할 수 있는 선에서 꾸몄다.

“온라인에서 시작했으니 옷 원단 제작 값 정도만 돈을 들였어요. 소규모, 소자본 창업이죠.”

그는 첫 창업에는 ‘대출을 받아 크게 시작하지 말고 자기가 가진 돈 안에서 작게라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덧붙여 ‘부지런할 것’을 강조했다.

“게으르면 정보를 놓쳐요.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아직은 불안정한 청년창업가니까요.”

임대표는 라온미나 2호점을 제주에 낼 계획이다. “지금은 정부 지원금 혜택을 받고 있지만, 지원이 끊긴 이후의 삶도 대비해야 한다”며 야무지게 답하는 그의 표정이 밝다.

인현시장 청년가게 4호 이관호 서울털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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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털보 이관호(31) 대표.

늘 기계가 돌아가는 충무로 인쇄골목. 밥집과 선술집이 고단함을 달래주던 60년 전통의 인현시장이 있다.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가 닿을 법한 좁은 길에 작은 점포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좁은 시장 골목에 젊은 상인들이 들어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관호(31) 씨가 운영하는 ‘서울털보’는 인현시장 청년가게 4호다. 옛 경양식집 분위기의 선술집 안은 초록색 천장 아래로 모양이 제각각인 낡은 테이블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테이블은 모두 길에서 주워온 것이에요. 괘종시계는 풍물시장에서 4만원 주고 사왔죠. 돈이 없으니 인테리어 비용을 아끼려고 페인트칠도 직접 했어요.”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에 덩치 큰 주인장, 이관호 씨는 독특한 외모 덕에 시장 골목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수염은 스무 살부터 길러왔어요. 친형 결혼식에도 이렇게 하고 갔죠. 10년을 넘게 수염을 기르니 부모님도 이젠 별말 안 하세요”라며 웃는다.

 인현시장 청년가게
인현시장에 청년가게가 들어선 것은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전통시장 청년상인 창업지원’에 선정되면서부터다. 서울털보를 비롯해 닭강정을 파는 ‘청춘강정’, 액세서리 공방 ‘바스타드 키드’, 수공예품 가게 ‘따뜻한 봄꽃’ 등이 지난해 6월 문을 열고 성업 중이다. 처음에는 ‘과연 될까?’라며 우려도 했지만, 점심과 저녁 시간에 직장인들로 꽤 북적이는 것을 보고 힘을 냈다.

“젊은 손님이 많아요. 어떻게 왔는지 물어보면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보고 왔다고 해요. 저는 창업을 하며 돈을 주고 마케팅하는 것은 반대예요. 다 티가 나거든요. 돈 안 들이고 SNS만 잘 활용해도 도움이 됩니다.” 

그는 기계과를 전공해 대학 졸업 후 대형마트에서 신규 매장 리뉴얼을 했다. 공부보다는 장사에 관심이 컸다고. 20대 초반에는 명동에서 노점상도 해봤고, 이태원 우사단길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도 참여했다. 여기저기 떠돌다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 안에 수입 액세서리 가게를 처음 차렸다. 평일에는 가게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플리마켓을 다니다가 지금의 서울털보를 열게 됐단다.

“이제까지 운이 좋았어요. 계획하거나 의도한 것은 전혀 없죠. 서울털보가 중구의 핫플레이스로 선정되며 이름도 많이 알렸어요. 해외에서 중국인 관광객도 왔고, 일본인 블로거가 다녀가 글을 올리고 나서는 일본인 모녀가 치킨 먹으러 왔어요. 손님 늘어가는 재미가 있어요. 인현시장을 알리는 것이 서울털보도 잘되고 다 같이 상생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구로시장 청년 1호점 윤지혜·변은지 쾌슈퍼 대표 

쾌슈퍼 변은지 대표(왼쪽)와 윤지혜 대표.
쾌슈퍼 변은지 대표(왼쪽)와 윤지혜 대표.

창업을 하면서 좋은 동지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유쾌한 도전 앞에 든든한 동지가 있다면 이보다 행운일 수 없다. 구로시장 ‘영플라자’에 들어선 신개념 슈퍼마켓 ‘쾌슈퍼’의 윤지혜(30)·변은지(29) 대표는 대학 동기로 만나 창업 동지가 됐다. 함께 배낭여행을 떠나며 창업을 꿈꾼 것이 지금의 모습이 됐다.

“남들이 해외에 나가 유적지나 박물관을 돌아볼 때 우리는 전통시장의 매력에 빠졌어요. 각 나라에 있는 마켓을 돌아다니며 이 안에 문화와 삶, 예술 등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죠. 청년의 시각으로 만든 슈퍼마켓을 운영해보고 싶었어요.”

이들의 관심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행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창업을 결심했다. 2011년 ‘쾌슈퍼’로 상표 등록을 하고 지적재산권으로 출원했다. 쾌슈퍼의 ‘쾌’는 유쾌, 통쾌, 불쾌 등 감정의 ‘쾌’를 통칭한다. ‘쾌락원칙이라는 철학을 중심으로 인생을 즐겁게 하는 것을 만들고 사고파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청년들만의 힘으로 터를 잡는 것은 힘들었다. 이들은 부족한 부분에 대해 실무 경험을 쌓기로 하고 광고회사에 취업했다. 각자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도 동네 슈퍼마켓을 찾아다니는 독특한 취미는 여전했다. 사업을 결심한 계기는 동네 슈퍼마켓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며칠 전에 갔던 슈퍼가 다시 가보니 편의점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로시장에 들어온 것은 구로구청의 전통시장 청년상인 지원 덕분이다. 임대료 일부를 지원받아 꿈의 첫 가게를 열었다. 직장에서의 경험은 곧 슈퍼마켓의 광고업으로 발현됐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것도 어찌 보면 하나의 광고예요. 청년농부가 직접 만든 수제잼, 수제청 등 식료품을 소개해주는 플랫폼 같은 거죠.”

이 밖에 귤말랭이나 과일도 함께 판매해오다 최근에는 좁은 공간에 맞게 해외 식료품을 진열하는 기획전 방식으로 바꿨다. 지금 기획전 이름은 ‘쾌슈퍼, 마치 동남아’다. 쾌슈퍼에서 동남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하는 느낌을 공간에서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쾌슈퍼, 마치 동남아에 있는 것처럼’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좁은 가게 안에는 동남아풍의 이국적 정취가 그윽하다. 수입맥주가 가득한 냉장고 옆으로 쌀국수와 이름 모를 식료품들을 정갈하게 배치해 놓았다.

‘쾌슈퍼’가 문을 연 지 어느덧 3년째다. 손님이 오면 일단 대화로 소통을 트는 것이 이들의 철칙이다. 기호를 묻고 취향에 맞게 추천해준다. 시장 안인 데다 상권이 아직 크게 형성되지 않아 힘든 부분이 있지만, 두 사람의 유쾌한 철학 공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남미에서는 식료품 가게를 ‘콜마도’라고 불러요. ‘가득 찼다’는 의미죠. 그곳에서는 항상 노래가 흘러나와요. 지금의 쾌슈퍼는 대형마트와 비교하면 자본이나 밀집도가 낮을 수 있지만, 저희나 손님들로 인해 시장이 활기차고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이 됐으면 해요.”

[위클리공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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